애플과 삼성 그리고 경쟁
박철홍
애플과 삼성의 진흙탕 같은 특허 전쟁이 전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각각 자국에서는 유리한 판정을 받았고 제3의 국가에서는 판결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추세이다. 이 사건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경쟁이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이 글은 애플과 삼성의 소송사건이 현재 2012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주는지에 관한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무한 정글의 법칙의 이면을 추적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이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품을 판매할 때 비교의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효과를 준다. 서로 공생관계이기도 하다.경쟁의 룰은 공평해야하고 정의롭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경쟁의 구도는 고정화된다. 제한된 시장에서 경쟁자들은 서로의 영역이 구축되면서 이제부터는 서로의 견제가 있고 자기의 고객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으로 된다. 충성고객은 만들어지고 각각의 회사는 서로를 공격하지 않게 된다. 경쟁은 어느 시기에 서로 강한자를 알아보게 되고, 그래서 서로를 위해서 그들은 결코 싸우지 않는다.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서로의 일정 영역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이 경쟁의 말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득권의 고착화라고도 말한다. 2007년 대한민국 핸드폰 역사에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난다.
2007년 애플사의 스티브잡스는 완전히 새로운 핸드폰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것은 이제까지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래서 잡스가 말했듯이 “시장에 없던 것이기 때문에 시장조사까지도 무의미하다고 했던” 핸드폰인 아이폰3S를 발표한다.
애플의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되기 전의 핸드폰과 인터넷 상황은 대략 아래와 같다. 삼성과 엘지로 대변되는 핸드폰으로 잠깐 인터넷을 장시간 사용했을 경우에 요금폭탄이 다음달 고지서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하는 것은 애플의 아이폰이 나오기전에도 이미 국내에서 가능했었다. 필자도 대학교 1학년때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했다. 당연히 요금은 매우 비쌌다. 그래서 국내의 핸드폰의 사용자들은 아예 인터넷을 잠금모드를 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가 되었을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은 필자가 대학교1학년때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하고 군대를 갔다오고도 한참이 지난 2007년까지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래서 핸드폰의 인터넷은 그냥 폼이었고, 지금의 아이폰 같은 혁명은 아예 생각도 못했다. 문자 그대로 국내 핸드폰은 전화를 받는 용도였다. 그 당시 국내 핸드폰 제조사의 점유율은 대략 99프로였다.
그런데 애플사에서 정말 놀라운 핸드폰이 국내에 전해지면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그 충격은 윈도우가 전 지구를 휩쓸웠던 기세와 비슷했다. 인터넷의 개방,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사용하는데 그것이 무료라니, 충격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소비자는 물론이고, 통신업체와 경쟁제조사에게도 비상이 걸린 것이다. 컴퓨터 시장에서도2인자 취급을 받던 애플사가 핸드폰 시장에 뒷통수를 치며 나타난 것이다. 삼성과 엘지가 사이좋게 나눠먹던 핸드폰 시장은 급격하게 붕괴되었다. 그래서 한 때 TV광고는 와이파이라는 단어가 난무했고, 아이폰은 국내시장을 빠르게 점유해갔다. 와이파이는 그 시대를 대변하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다시 그 때를 생각해봐도 국내의 통신업체와 제조사들은 핸드폰 인터넷의 저렴한 가격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자본과 기술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핸드폰을 이용한 인터넷 시장의 선점을 놓치고 말았다. 괜히 다른 업체와의 공격적 마케팅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핸드폰과 인터넷을 제조사 통신사의 담합으로 사이좋게 나눠먹다가 그것을 완전한 개방화를 표방한 회사로 인해서 일순간 점유율을 빼앗겨버린 사례이다. 지금도 아이폰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대략 20프로 이상으로 이것에 관한 어느 양심있는 학자는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소비자가 자국기업의 횡포로부터 해방된 사건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비단 가전제품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러하다. 이렇게 고착화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경쟁은 어떻게 다가올까? 사실 이 부분이 필자가 쓰려고 하는 요지이다. 애플과 삼성의 경쟁을 보면서 느낀 지점이기도 하다. 아마도 삼성과 엘지는 애플에게 빼앗긴 자국의 안정된 시장이 못내 아쉬울 것이다. 특별한 혁신 없이도 애국심광고만으로 별다른 불만 없이 구매하는 충성고객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신들의 시장을 빼앗긴 것은 참으로 비통했을 것이다. 이제까지 받지 못했던 환상적인 대우를 받은 사람들은 다시 돌아올 리가 없다. 국내 시장에서의 삼성과 엘지의 시장 점유율은 여전하지만, 또 앞으로 핸드폰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제3의 기업이 들어와서 흔들어버린다면 어떠할까? 그게 아마도 가장 무서운 이야기일 것이다. 애플이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다는 애플TV는 어떠할까? 이 부분이 아마도 다시 한번 대한민국을 흔들 것이라 기대해본다.
애플은 한국에서 외계인 같은 존재이다. 저항할 수 없었던 이상한 존재쯤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대한민국 언론을 조작할 수 있는 대기업은 애플의 소비자가 된 사람들을 앱등이라면서 비하한다. 그렇게 고립시키는 것이다. 더 이상의 자신들의 충성스런 고객들이 눈을 못 돌리게 하는 야비한 전략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대기업의 횡포에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완전히 고착화된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어떠한 선택을 할까? 어떠한 경쟁 상태에 놓이게 될까? 예전에 대한민국 최소한 필자가 태어날 시기까지 대한민국의 트렌드는 “공부 잘 하면 잘 먹고 잘 산다” 다. 실제로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사회적인 명예, 돈, 지위를 얻는데 성공했다.그냥 서울대만 나오면 다들 사회에서 한자리씩 먹고 살아갔다. 심지어 서울대를 나오면 포장마차를 해도 대박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그 어떠한 배경이 상관없이 그러했다. 그냥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이 통과되었다.
현재 2012년도 공부를 잘하면 그 사람의 지위와 명예가 보장될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공부잘하고 똑똑해도 삼성의 직원일 뿐이지, 삼성 같은 기업을 만들어내지 못한다.정주영처럼 아무것도 없이 현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미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골목상권까지 싹쓸이해버리는 상황이다. 지금은 공부의 능력과 상관없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영업을 하든지 아니면 대기업의 직원으로 존재한다. 그것이 협력업체이든 자회사이든 그렇게 양분된다. 자 여기서부터 약간은 충격적인 단어를 사용할까한다.
“자발적노예” 노예라는 말이 비위에 거슬릴 수도 있지만 명백하게 지금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가장 정확한 단어라 확신한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대한민국의 국민은 대기업의 모든 것을 다 사용하기 때문이다. 의식주에서 주는 대부분 아파트가 차지한다. 아파트는 대기업이 만든 시멘트인데 원가로 따지면 평당 100만원 미만의 아파트를 억대에 구입 한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대략 2억을 모으는데에는 20년정도가 걸린다. 평생을 다 바쳐서 사회적 부가가치를 만들고 모아놓은 잉여생산물을 재벌에게 고스란히 그것도 자발적으로 내어준다. 음식, 의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그렇다.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지금 거의 자발적 노예상태이다. 심지어 해외여행도 대부분 패키지로 이루어지는데 해외의 숙박시설부터 가이드, 그리고 가이드가 추천하는 음식점까지 유명도시는 사실은 자신들끼리 돌려먹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고착화된 사회는 비단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외국도 비슷하다. 영국,일본, 미국 강대한 나라들은 대부분 그렇게 자신들만의 리그를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 나라의 국민들이 선택하는 것도 대부분 비슷하다. 스포츠스타와 음악 즉 아이돌이다. 사회적 성공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하고, 그곳도 역시 고착화되어 있는 시장이지만 능력이 최우선으로 말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인이 주도권을 가지고 판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은 매우 매력적이다.
어느덧 우리는 스포츠 스타 마케팅에 노출되어 있고, 아이돌이 시장을 장악하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 그래서 스포츠와 음악 댄스에는 인재가 넘치고 정작 공대나 다른 업종에서는 사람이 부족한 현상을 격고 있다. 경쟁이 치열한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스포츠스타와 아이돌은 더욱 많아지고 있다. 이제 한류가 시대의 대세라고 말하면서 마치 대한민국이 잘나가기 때문에 그러하다고 믿게 된다.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지점은 이곳이다. 지금의 한류는 결코 사회가 올바르기 때문에, 사회가 정의가 넘치는 사회이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 사회가 아주 경제적 호황을 이루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큰 호응을 얻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의 한류는 다른 분야에서 도저히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근거가 된다. 그 경쟁이란 중산층 이상이 된다는 것.즉 부르주아가 될 수 있느냐이다.
한 국가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인간에게 숨어있는 욕망이 있다면 사회적 성취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시대 이전까지 인간의 사회적 성취감은 철저하게 신분제로 정해졌다. 따라서 사회적 성공은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만 가능했고, 조선의 고전 홍길동전은 사회적 성취감과 사회 제도간의 충돌을 설명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신분제 사회는 아니다. 그런데 사회가 정체되고 고착화되면 되어 있다면 사실상 신분제 사회와 다를 것이 없어진다. 구성원들은 그러한 압박을 피부로 느끼면서 살아간다. 즉, 예전에는 공부가 그 사회적 성공의 모델이었다면 지금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신분제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성공을 바라는 부류는 치밀하게 연구한다.아직도 여전히 공부가 사회적 성공의 지름길이라 믿는 부류가 존재한다. 인간의 보수성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스포츠와 아이돌이라는 부류로 이동한다. 방송매체에서 오디션프로그램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부류는 그 경쟁 자체를 포기하고 살아가는 부류가 생겨난다. 1990년대에 “공무원은 멍청해서 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 시기에 얼마나 대한민국이 역동적이었는지를 단번에 말해준다. 부르주아가 될 가능성이 적어지자 사회는 어느새 공무원이 사회적 대세가 되었고, 사회의 모든 에너지가 공무원에 쏟아지는 낭비가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냥 적당히 삼성맨이 되면 단순히 다른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하고, 공무원이면 안죽고 숨쉬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자랑할 만하다. 이토록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는 안 죽는 것이 지상과제인 것이다. 이러한 사회현상은 이미 경쟁을 포기한 곳에서 나타나는 흥미로운 것이다. 이 땅의 지상과제는 공무원이 되든지, 아니면 대기업의 사람이 되든지로 양분되고 그 나머지는 그 경쟁에서조차 밀린 패배자의 이미지가 매우 강하게 남아있게 되었다.
그리고 부르주아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스포츠와 아이돌로 사회적 성공의 해답인 것처럼 사회가 몰아가고 있다. 박지성의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입성은 대한민국 남성들에겐 자존심을, 김연아의 눈물은 대한민국을 울렸다. 박지성과 김연아가 부르주아적 계층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것은 아주 뛰어난 공부와 능력으로 삼성에 입사해서 상무가 되어도 이들보다 더 많은 돈과 인기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아예 상대가 되지 않는다. 박지성이 일주일에 1억을 넘는 돈을 번다고 한다. 김연아의 광고 마케팅은 이미 기존의 연기자들을 넘어섰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사들은 해외에서 누가 누가 스포츠로 성공하고 있다는 것들이다.
유명팀의 유소년축구팀에서 주장을 하고 있다는 뉴스, 미국 골프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소식들, 한류의 음악이 라틴을 강타했다는 소식. 사실 이 모든 것이 20년 전에 일본, 30년전에 영국 등에서 나타났던 사회적 현상이다. 그러한 경쟁도 한계는 있는 법이다.유럽의 축구시장은 유럽인에게는 진실로 부르주아가 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일 것이다. 그냥 힘으로 축구만 잘하면 되는 것이고, 자신들이 유럽인이라면 더할나위 없을 정도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축구시장에 흑인과 아시아인이 들어오고 있고, 그 만큼 유럽인들은 축구인의 생산자에서 배제되고 단순한 소비자가 되고 있음은 자명하다. 영국이 세계 최고의 축구리그를 소유하고 있지만 정작 자국의 월드컵 성적은 기대이하이다. 영국인이 얼마나 자국 축구시장에서 배제당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또 하나의 대한민국을 강타한 키워드가 있다면 “커피”가 될 것이다. 스타벅스로 시작된 커피시장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과히 커피가 대한민국을 마셨다가 더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커피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허영심이다. 과시욕과 자신이 얼마나 멋진 사람인가를 뽐내고 싶어하는 그 지점에 있다. 단순하게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뉴욕을 따라가는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사람인 것이다. 스타벅스에서 노트북과 서류를 만지작거리면서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아마도 가장 폼나는 행위가 될 것이다.그래서 스타벅스는 뉴욕커가 된다. 사회적 성공을 포기한 부류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허영심이 커피와 함께 투사되었다고 판단한다. 누구나 아주 작은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커피 한잔의 원가가 100원도 되지 않는다는 것 쯤은 알고 있다. 그런데 스타벅스의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100원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허영심, 사회적 성공은 포기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욕망이 비싼 커피와 함께 어울린다. 그 씁쓸함, 자신이 결코 이 사회적 성공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최후의 저항이다. 우리 사회에 사회적 성공(부르주아)을 포기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커피를 마시는 이 허영심은 사실 슬프고 쓴 커피라 믿는다.
경쟁의 왜곡은 진짜 엉뚱한 사회적 에너지로 쏠리는데 그것이 성인비디오시장이다. 미국, 일본, 영국 등은 전 세계적인 성인비디오시장 생산국이다. 엄청난 사회적 잉여생산물을 쏟아낸 결과물로 예쁜 얼굴, 몸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투자에 대한 미련은 그렇게 흘러가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투자가 TV를 차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TV의 제한된 시간은 그 경쟁에서도 처절하다. 필자는 성인이며, 성인비디오를 법적으로 허용한 범위에서 즐겨본다. 그런데 일본, 미국, 영국, 러시아 등의 성인비디오에 비해서 한국 성인비디오의 여성들의 비주얼은 최악이다. 필자는 이 부분이 아직 우리 사회가 경쟁의 마지막 단계에까지는 오지 않았다고 본다. 그러나 언젠가 성인비디오시장이 커지고 고수익을 얻는 단계가 되면 비주얼이 지금의 일본을 압도할 것이라 확신한다. 일본 성인비디오의 여배우가 한편에 많게는 수억까지 배당금을 받는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놀랍게도 한국의 성인비디오시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고 있고,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경쟁은 대기업이 모든 것을 움켜쥐고 있는 상황에서 일정 부분은 포기하고 또 일정 부분은 공무원이나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을 삶의 마지막 목표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잠재된 사회적 성공의 욕망은 스포츠와 아이돌로 대변된다.
어쩌면 우리는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에서 진짜로 배워야할 교훈이 있다면 대한민국을 움켜쥐는 저 재벌들을 이길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 아닐까? 애플은 이 땅의 재벌을 이기는 법을 보여줬다. 그들의 기득권을 잡아 낼 수 있는 그 지점을 정확하게 보여줬다고 본다. 재벌들이 서로간의 경쟁이 아닌 나눠먹기하고 있는 그 지점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에 카카오톡이 있다. 통신사의 압박에 굴하고 않고 무료문자서비스, 음성통화까지, 그리고 기대해본다. 화상통화까지 무료로. 그래서 저들이 우리의 호주머니를 털어갔던 추잡한 방법이 무엇인지를 만천하게 공개되어서 다시는 이 땅에 발을 못 붙이게 되기를 바란다. 사실 이미 화상통화, 문자서비스, 그리고 매우 싼 음성통화의 기반은 마련되어 있다. 그것인 각각의 핸드폰이 인터넷을 접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는 컴퓨터로 음성통화, 화상통화, 채팅을 일정 금액의 돈을 내고 무제한으로 해왔다. 왜 핸드폰에서는 안되는 것일까? 우리의 호주머니가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번 아이폰5에서는 화상통화가 기존 와이파이존이 아닌 3G에서도 무료로 되는 기능을 탑재한다는 루머가 돌고 있다. 이제 애플이 소비자가 어려워하는, 그것도 금전적으로 어려워하는, 그래서 원래 있는데 쓰지 않는 기능을 노리고 있는 듯하다. 아마 영상통화가 제한이 없어진다면 지금의 통신사는 그 더러운 가면을 벗게 될 것이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채팅, 문자, 화상통화, 심지어 음성통화까지 사실상 지금 각각의 집에 설치되어 있는 인터넷 정도의 비용이면 된다는 사실에 직면할 것이다. 기억하자. 애플이 뚫고 있는 그 지점. 우리 혹은 우리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야할 경쟁 루트는 아닐까?
애플과 삼성의 소송을 보면서 이 사회가 얼마나 고착화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치가 필요한가를 생각했다.아무리 기업이 혁신과 경쟁의 관계에 놓이게 되더라도 소비자가 이미 충성고객으로 변화하는 그 순간 기업의 혁신은 없어지고 오직 영역 지키기만 존재하게 된다. 현명한 소비자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에 발 빠르게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 내 국가, 내 고장, 내 친척, 심지어 내 가족이기 때문에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나의 노동의 댓가를 제품과 교환하는 것이기에 철저하게 나의 이익에 규합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이러한 방법은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에도 철저하게 적용된다. 우리가 얼마나 멍청한 소비자인지 그리고 유권자인지를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너무나 과한 과잉충성고객은 언제나 기업과 정치인에게 뒷통수를 맞게 되어 있다. 그리고 나의 경쟁도 비참하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