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9일 일요일

자동차 엔진 오일 교환주기에 대한 소비자보호원자료


자동차 엔진 오일 교환주기에 대한 소비자보호원자료

짧은 엔진오일 교환주기가 소비자에게 시간 손실 및 경제적 부담이 되고 국가적으로도 낭비를 초래하여 자가운전자, 택시회사, 자동차사, 엔진오일 제조사, 부분정비업협회를 대상으로 오일의 교환 실태와 의식을 조사
□ 평균 엔진오일 교환주기가 6,110㎞에 불과하고, 78.2%가 교환소에서 넣어 주는 대로 받거나, 권유된 상품 중에서 선택을 하는 등 소비자의 상품선택이 취약하며, 오일 교환주기 경과경험자 중 64%가 오일을 제때 교환하지 못해 불안감을 겪었을 정도로 엔진오일 정보가 부족한 것으로 조사됨
□ 엔진오일을 필요시 보충하면 15,000㎞이상 운행할 수 있음에도 소비자들은 정보부족으로 짧은 거리를 운행한 후 교환만 하고 있는 실정임
□ 국내 자동차사들이 신차·노후차량의 경우도 엔진오일 조기 교환이 필요없으며, 엔진오일 조기 교환과 엔진성능 향상, 엔진오일을 오래 사용하는 것과 환경오염이나 연비와도 거의 관련이 없다는 실험 결과가 있으나 제대로 정보제공이 안되어 사회 전반(엔진오일 제조업계, 정비업계, 소비자)에 잘못된 인식이 만연되어 연간 약 3,300억원 이상이 낭비
□ 최근 자동차와 엔진오일 성능의 비약적 발전으로 외국 자동차사가 교환권장주기를 15,000㎞∼20,000㎞로 늘렸으나, 우리의 경우는 수출용에만 외국 자동차사와 유사한 주기를 권장하고, 국내에서는 외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10,000㎞를 권장하고 있으며, 또한 '가혹조건'을 광범위하고 추상적으로 설정하고 있어 소비자의 적정 교환주기 설정에 혼란을 줌
□ 엔진오일 교환시 대부분 5가지를 일괄비용으로 계산하고 있어 소비자의 선택이 자유롭지 못하며, 정비업체가 소비자와 생산자 중간에서 가격이나 서비스의 질을 좌우하고 있고 가격투명성이 미약하여 소비자에게 불리
□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자동차사 등 관련 사업자에게 '가혹조건'의 구체화와 권장 교환주기 연장을 요구하고, 엔진오일 교환비용의 부분별 가격 별도 표시방법 시행을 요구하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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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개요
- 자동차 보유대수가 1,000만대(이중 73%가 승용차) 이상으로 대중화시대가 실현되었으나 '98년 6월 우리원에서 실시한 승용차 소비실태 조사결과 엔진오일 교환주기가 짧아 소비자에게 시간 손실 및 경제적 부담이될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낭비를 초래
▷ 현재 우리나라는 국산 엔진오일의 원료인 윤활기유의 55%, 엔진오일첨가제의 경우는 100%를 외국으로부터 수입(약 1억5천만 달러)
⇒ 이에 엔진오일 교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개선을 유도하기 위하여 '98년말 수도권 자가용 운행자 624명, 34개 택시회사, 자동차사(3개사), 엔진오일 제조사(6개사), 부분정비업협회를 대상으로 엔진오일의 교환 실태와 의식 등에 대해 조사를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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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조사 결과
1) 자가용의 평균 엔진오일 교환주기 : 6,110㎞(영업용의 1/2에 불과)
▷ 특히 66.3%가 5,000㎞ 이내에서 엔진오일을 교환하고 있고, 3,000㎞이내에서 교환하는 경우도 전체의 10%나 차지
▷ 영업용 택시의 엔진오일 교환주기 11,900㎞와 비교해보면 약 1/2수준이며, 자가용의 최저 교환주기는 2,500㎞, 영업용택시는 7,000㎞로 나타남
2) 정비업소에서 가장 짧은 교환 주기를 권해
▷ 5,000㎞이하에서의 엔진오일 교환 실태를 분석해 본 바 주로 정비업소들이 가장 짧은 교체주기를 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음
3) 엔진오일 보충 : 택시 93.6%, 자가용 20.9%
▷ 택시는 100% 모두가 엔진오일을 주기적으로 점검하며, 93.6%가 오일을 보충하는데 반해 자가용은 20.9%만이 엔진오일을 보충했던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가혹조건에서 운행하는 영업용택시의 엔진오일 교환주기가 자가용보다 더 긴 원인으로 작용
4) 70.5%가 부분정비(경정비)업소에서 교환
▷ 응답자의 70.5%가 엔진오일을 부분정비(경정비)업소에서 교환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나머지는 자동차사의 직영·지정정비공장(17.5%), 자가정비코너(5.9%), 세차장(4.8%)의 순임
5) 엔진오일 상품 선택 : 21.8%만이 본인 지정, 교환업소 영향력(78.2%)
▷ 엔진오일 교환시 소비자가 상품을 직접 선택하는 경우는 21.8%에 불과하며, 78.2%는 교환업소의 종사자가 넣어 주는대로 받거나, 업소에서 권유된 상품 중에서 선택을 하는 등 소비자의 상품선택이 취약함
6) 운전자의 89.3%가 자동차업계에서 설정한 가혹조건에서 운행
▷ '짧은 거리 반복운행' 77.6%, '공회전·가다서다를 반복' 64.2%,'모래·먼지가 많은 지역 운행' 28.7% 등 전체 응답자의 89.3%가 자동차사가 설정한 가혹조건에서 운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가혹조건에서의 운행이 일상적인 현상임을 보여줌
7) 62%가 교환주기 경과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이중 64%는 불안감을 느껴
▷ 운전자의 62%가 자기 나름대로의 엔진오일 교환주기 경과 경험을 갖고 있으며, 이때 64%는 엔진오일을 제때 교환하지 못하여 불안감을 겪었으며, 여성(84.2%)이 남성(59.1%)보다 심하게 불안감을 느꼈던것으로 나타남
8) '신차와 노후차의 경우는 조기에 엔진오일을 교환해야 한다'는 의식 :자동차 업계만 모두 부동의, 엔진오일 제조업계와 정비업계, 소비자들은 높은 동의, 택시보다 자가용의 동의율이 높음
▷ 자가용의 62.8%, 영업용의 60.6%가 '신차의 최초 엔진오일 교환은2,000㎞이내에 해야 한다'고 응답하였으며, '엔진이 노후되면 오일교환 시기를 단축해야 한다'에 대해서 자가용 61.3%, 영업용 45.5%가 '그렇다'고 응답(운전경력이 많을수록 조기 엔진오일 교환의식이 높음)
▷ 자동차사는 모두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반면, 다수의 엔진오일제조사와 부분정비업계는 '그렇다'고 답변
9) '엔진오일 교환주기가 엔진성능·환경오염과 관련된다'는 의식 :자동차사들은 부동의, 소비자와 엔진오일 제조사는 비교적 높은 동의율을 나타냄
▷ 자가용의 34.2%가 '오일 교환주기가 빠르면 빠를수록 엔진성능이 향상된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53.4%는 '오일 교환주기가 늦으면 늦을수록 환경오염을 유발한다'고 인식
▷ 자동차사는 '그렇지 않다'고 하였으나, 엔진오일제조사는 '그렇다'와 '그렇지 않다'로 양분된 의견이 제시되었음
10) 교환비용의 부분별 가격표시 도입에 대한 의견 : 찬성 87.5%, 반대 1.6%
▷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현재 오일 교환시 엔진오일, 오일휠터, 에어크리너엘리먼트, 공임, 폐기물처리비용 등 5가지를 일괄해서 비용으로받고 있는 것에 대해 부분별 가격 별도표시 방법의 도입을 원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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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오일 교환과 관련된 문제점
1) 외국 자동차사나 수출용보다 짧은 우리 자동차사의 권장 교환 주기
▷ 최근 자동차와 엔진오일 성능의 비약적 발전에 따라 외국 자동차사가 엔진오일 교환 권장주기를 15,000㎞∼20,000㎞로 늘렸으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수출용에만 외국 자동차사와 유사한 주기를 권장하고, 국내에서는 외국의 약 절반 수준에 불과한 10,000㎞를 권장
▷ 오히려 유럽의 자동차사들은 환경오염 방지, 자원 절약, 소비자의 경제적 이익 보호를 위해 우리나라보다 교환주기 연장에 적극적임
2)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가혹조건 표시와 가혹조건 검증의 불투명성
▷ 자동차사와 엔진오일 제조사는 표면적으로 10,000㎞의 교환주기를 권장하고 있으나, '가혹조건'을 추상적이고 광범위하게 설정하고 있어 소비자의 적정 교환주기 설정에 혼란을 줌
▷ 자동차사가 가혹조건으로 명시한 택시는 자가용보다 더 저등급의 엔진오일을 사용하면서도 오일 교환주기가 길며, 평균 폐차 주행거리는 자가용의 4배 이상인 52만㎞임
▷ 미국자동차기술협회(SAE)가 가장 가혹한 운행상태인 순찰차가 5,000㎞까지 오일을 사용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승용차에 비과학적으로 가혹조건을 설정하고 5,000㎞의 교환주기를 권장하는 우리나라 자동차사들의 엔진오일 교환 권장기준은 재설정이 필요함
3) 사회 전반에 만연된 엔진오일 관련 정보·인식 부족
▷ 국내 자동차사들이 신차·노후차량의 경우 엔진오일 교환주기를 앞당길 필요가 없다는 실험 결과가 있음에도 제대로 정보제공을 하지않아 사회 전반에 잘못된 정보·인식이 만연되어 있고, 소비자들이 불필요하게 엔진오일을 교환하거나 조기교환을 하게 하고 있음
▷ 또한 엔진오일을 빨리 자주 교환해주는 것과 엔진성능 향상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엔진오일을 오래 사용하는 것과 환경오염과도 관계가 없으며, 연비(출력)와도 거의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나, 잘못된 인식은 사회 전반에 상당히 폭넓게 퍼져있음
▷ 엔진오일의 양이 부족할 때 보충만 하면 현재의 권장 교환주기(10,000㎞)보다 훨씬 많은 거리를 운행할 수 있음에도 소비자들은 정보부족으로 오일을 보충하지 않고 교환만 하고 있는 실정임
- 엔진오일 게이지가 Mini.(L)에 있을 때 약 1ℓ 오일을 보충하면 1/3은 교환한 것과 같기 때문에 보충을 하면 오래 사용할 수 있음
4) 사업자들의 빠른 오일 교환주기권장으로 연간 3,300억원 이상이 낭비
▷ 엔진오일 관련 사업자들의 짧은 엔진오일의 교환유도('97년 승용차평균 4회 엔진오일 교환)로 소비자에게 시간과 비용의 낭비를 초래하는 외에도 자원낭비 및 환경오염 등으로 사회경제적인 부담도 증가
5) 엔진오일 교환 가격 결정에 소비자 영향력 미약
▷ 엔진오일 교환시 대부분 5가지를 일괄비용으로 계산하고 있어 소비자의 선택이 자유롭지 못하며, 가격의 투명성이 미약함
▷ 엔진오일 관련 상품은 소비자보다 정비업체가 최종 소비자가 되는 기형적인 시장구조로 되어 있어 정비업체가 소비자와 생산자 중간에서 가격이나 서비스의 질을 좌우하고 있어 소비자에게 불리
- 엔진오일 교환은 자동차관리법상 정비로 분류되어 있지 않아 직접적으로 비교하기가 곤란하지만 일반정비의 시간당 공임 16,790원에 비춰 엔진오일 평균 교환비용 22,000원중 공임이 약 10,000원 정도 차지한다는 것은 과다한 공임으로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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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방안
1) 엔진오일 교환 주기의 합리적인 재설정 필요
⇒ 승용차 제조사는 취급(사용)설명서의 '가혹조건'을 해석이 분명해지도록 구체화하고, 검증이된 것 중심으로 재정리해야 해야 할 것임
⇒ 최소교환주기는 합리적으로 재설정해야 할 것이며, 최대교환주기는 외국 자동차들이나 수출용 차량과 같은 정도로 연장이 요구됨
2) 엔진오일 교환 시장에서 소비자의 선택권 보장
⇒ 국내시장에 낮은 등급의 엔진오일들이 유통되고 있는데 이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이 각 부분별로 분할해서 상품및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도록 각 부분별 가격 별도 표시방법 시행요구
3) 승용차운전자들의 비용절감 노력과 의식전환 필요
⇒ 엔진오일은 필연적으로 자연 감소되므로 오래 사용하려면 주기적인 점검과 오일 보충의 습관화가 요구(보충용오일·보충용캔 휴대가 필요)
⇒ 자동차는 대개 엔진성능이 떨어지면 오일의 교환주기가 짧아질 수 있으므로 자동차 구입시 엔진오일 등 각종 오일의 교환주기를 비교·분석한 후 구매하는 경제적인 소비행위 추구
- 외국의 경우는 엔진오일의 교환주기가 짧으면 차량성능이 안좋은 것으로 소비자들이 판단하고 구입을 꺼림

2012년 4월 26일 목요일

최초의 정보 그리고 마지막 정보는 똑같다

  최초의 인류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성경에 기록된 것은 어디까지나 매우 독특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고 그 사람을 증명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인류가 최초에 어떻게 살았을 것인가는 대략 유추할 수 있다. 최초의 인류는 현재와 같은 집도 없었으며, 냉장고가 없었기 때문에 식량의 저장도 불가능했다. 게다가 농업 역시 매우 제한적인 곳에서 이루어졌다. 아마도 인류최초의 집단은 난해했을 것이다. 대체 어떻게 살아야하지?라고 스스로들에게 물었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참으로 어려운 생존의 문제이다. 아마도 실제 사망률도 매우 높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생존기간도 그렇게 길지 못 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인류는 생존했고 놀랍게도 지금까지도 살아있다. 그러면 이 정보의 시대라 일컬고 있는 지금 필자는 생각해본다. 인류 최초의 정보는 무엇이었을까? 인류는 최초의 정보에 무엇을 담고 있었을까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정보의 홍수에 살아간다고 하는데 우리에게 그 정보는 과연 다 필요한 것일까? 그리고 그러한 정보들은 왜 나오는 것일까? 밑도 끝도 나온다. TV, 인터넷, 신문 등에서 온통 정보뿐이다. 현대인은 눈뜨고 눈 감을 때까지 끊임없는 정보들 사이에서 살아간다. 아마 꿈에서도 정보를 얻을 것이다.

  최초의 정보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현재 접하고 있는 정보의 정체를 알아야한다. 정보의 핵심은 그 미디어들이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행동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에 있다. 우리는 쉽게 노출된다. 예를 들어 아침에 바쁜 일상의 현대인은 알람을 누르고 괴롭게 일어나고 허겁지겁 밥먹고 회사에 출근하고 그러다가 쉬는 시간에 커피를 마시고 저녁에 소주에 삼겹살 그러다가 노래방,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나들이 정도. 뭐 인생이 짜여진 각본처럼 만들어져 있다.

  이러한 것들을 우리는 아주 철저하게 훈련받고 또 아주 충실하게 따른다. 이러한 정보들은 철저하게 만들어진 정보들이다. 다시 말해서 진짜로 돈버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고 철저하게 소비하라는 것이다. 소비를 하면 누군가는 이익을 얻지 않을까? 이 사회의 누군가는 그러한 소비로 인해서 엄청난 이익을 얻는다.

  필자가 말한 "돈버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의 의미는 정보를 숨기고 있다가 올바른 표현이겠다. 따지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어떤 누가 돈버는 법을 그것도 모르는 대중에게 가르쳐주겠는가? 주식투자에서 유망주식을 말해도 그것이 진짜 정보인지 어쩐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진짜 돈버는 정보는 아무에게도 가르쳐주지 않는다이다. 아마도 가르쳐준다면 자신과 아주 가까운 사람들 정도로 국한된다.

  이게 우리가 매일 같이 보고 듣는 정보의 실체이다. 우리는 결코 그러한 정보를 가지고는 사회적으로 돈이라는 부분에서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그 정보는 매우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 특성상.

  그러면 인류 최초의 정보는 어떠했을까? 인류의 최초정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에 뭐가 있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주변에서 매년 무슨일이 발생하는지를 간파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는 추장이나 부족장이라 부른다. 실제로 현재도 초기 석기시대삶을 살아가는 부족에서도 부족장이 어느정도의 정보를 소유하고 있다. 그 정보는 광범위해서 주술행위도 포함된다. 주술행위를 잘 보면 그 속에도 생산자와 소비자가 있다. 소비자가 되는 추장 아닌 사람들은 주술자체에 관해서 평소에는 관심도 없다가 추장이 주술을 해야할 시기라고 하면 작업들을 시작한다. 이 패턴 현대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필자가 이 글을 쓴 것은 파티의 법칙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정보의 제한과 폐쇄성은 그것이 해체되는 경우가 있는데 더 이상 그 정보가 유용하지 않을때이다. 파티의 법칙이란 파티에 갔더니 요즘 뭐가 좋더라 어떤 주식이 잘나가더라 등의 소문들은 지금 통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끝난 정보란 것이다. 그것을 파티의 법칙이라 말한다.

  이미 해먹을 만큼 다 해먹은 상황에서 정보는 자기 과시일 뿐 실제적으로 고급정보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미디어에 속지말자. 속아선 안된다.















신승철, 에코소피, 서울, 솔.

매스미디어 시대는 대중의 소비와 유통과 결합된 TV매체를 통해서 시작되었다. 매스미디어는 대중의 잠재적 소비욕구를 자극하고, 문화산업을 통해서 생산된 문화상품을 소비하도록 강요했다. 대중의 삶은 매스미디어로 포위된다. 아침에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해주면서 공론의 장으로 인도하는 신문, 자동차를 몰고 출근하거나 여성들이 가사노동을 할 때 귀를 기울이게 하는 라디오, 노동을 마치고 여가시간에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TV, 주말에 찾게 되는 영화 등 매스미디어는 대중의 기호와 소통의 욕구를 충족하는 가십거리를 제공해준다. 그러나 대중은 그것을 소비하는 수동적인 주체일 뿐 문화생산에 개입하거나 참여할 수 없다. 이 속에서 대중문화는 사람들의 삶에서 생산되고, 소통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조작하고 주입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소수의 문화생산자와 다수의 문화소비자는 지식인/대중이라는 모델과 같이 능동적인 소수정예의 전위적인 부위와 수동적이며 문화생산능력이 없는 후위부위인 대중의 이분법을 만들어낸다. 이 속에서 대중문화는 사람들의 삶 속에 있는 문화적 다양성과 문화생산능력을 획일화시키고, 상품소비의 능력으로 만들어낸다. 이러한 일방적인 정보가 소비되는 과정에서 대중들은 무비판적으로 문화상품을 소비하면서, 그것의 허구적인 논리구조에 포섭되는 것이다. p. 189.


2012년 4월 25일 수요일

배아는 결국 인간 욕망의 산물이다

  배아가 인간이냐 아니냐 그리고 그것이 도덕적이냐 부도덕한 것이냐. 이런 딜레마로는 아마 해결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문제를 도덕과 부도덕, 인간과 비인간으로 구분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문제의 근원을 잘못 알고 있다.

  가령 배아 50개 있는 곳에서 불이 났다. 그리고 그 안에 사람이 3명정도 있었다고 했을때에 누구를 우선으로 구해야 할까? 50명인 사람? 아니면 지금 쓰러져있는 3명?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3명을 먼저 구해야 한다고 할 것이다. 배아50명이란 또 어떻게 해야한단말인가. 만일 소방관이 배아50명이 숫자가 더 많다며 쓰러진 3명을 구조에 소홀히 했을 경우에는 심각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생명이란 숫자로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배아가 생명이냐 아니냐는 굉장히 혼란스럽다. 세포를 인간이라고 말해야한다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사회적 동의도 없는 상황이다. 아마도 난자와 정자가 만나는 순간부터 인간이라 말해야 옳을 것이다.

  많은 논란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배아연구는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이다. 계속 진행될 것이다. 배아문제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필자는 앞으로도 끝없이 진행될 사업에 있다고 본다.

  인간은 누구나 더 건강하게 오래살고 싶어한다. 그 욕망에는 끝이 없는데 타인의 희생이 있더라도 인간은 오래살고 싶어하는 것은 사실이다. 세계 어느나라에나 있는 장기매매는 그 욕망의 끝을 보여준다. 장기매매는 수요자가 없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요자들은 매우 높은 위험을 감수하고 공급자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 그리고 인간의 양심을 찌르고 평생 살아가게 된다. 물론 돈이 많은 사람들이 다 그 수요자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이 높음을 말하는 것이다. 오해말자.

  자 이제 어찌되었든 그러한 도덕적인 부분에서 일정 수준 혹은 아주 많은 부분 피할 수 있는 것이 나왔다.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것. 어찌되었든 인간이라고 말하기엔 분명 다소 그 세포를 변호하기엔 변호하는 쪽도 벅차고, 그 사업의 발전으로 가까운 내 가족이나 친구 등이 더 낳은 삶을 살아간다면 선뜻 인간이라고 동조하기도 어렵게 된다.

  아마도 그렇게 배아줄기세포는 인류의 더 낳은 삶을 위해서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것이라 확신한다. 필자는 이 문제는 인간 욕망과 관련된 것이라 본다. 더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어하는 욕망. 그 욕망을 약간의 도덕적인 부분에서 결함이 다소 있더라고 반드시 하고야 말것이다. 사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그렇게 도덕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한잔은 제3세계의 어린이 노동자의 죽음으로 마시고 있다.

  아마도 먼 훗날 인간이 지금보다 더 건강하고 오래살아간다면 아마도 인간의 희생 아래서 시작된다고 봐야할 것이다.

2012년 4월 24일 화요일

마이클 샌델의 정의사회의 조건

  공리주의는 개인이 느끼는 기쁨이나 쾌락이 행복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정언명령에는 두 가지 공식이 있다. 첫째는 보편적 법칙의 공식으로 당신의 의사의 준칙이 항상 보편적 법칙이 되도록 행동하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즉 행위의 준칙을 보편화함으로써 그것이 정언명령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이러한 준칙의 보편화는 자신의 욕구나 욕망을 타인의 그것보다 우선하는가를 조사하기 위한 테스트다.

  정언명령의 두번째 공식은 목적으로서의 인간성의 공식으로 이성적 존재인 인간에 대해 당신의 인격이든 다른 사람들의 인격이든 간에 인간성을 단순한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명령하는 것이다. 거짓말이나 살인, 자살은 모두 인간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이는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해서는 안 되는 행위다.

  오늘날 세계에서는 과학적 세계관이 발전하면서 목적론적 세계관이 쇠퇴하고 있다. p. 93.

  인간에게는 자유로운 의사나 선택뿐만 아니라 구성원의로서의 책무도 존재한다. 왜냐하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인생이나 공동체를 해석하고. 그 이야기가 구성원으로서의 책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이야기적인 좋은 삶을 고려하지 않고 정의를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정의를 생각할 때 도덕적 또는 종교적 문제를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 p. 97.


  고전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은 자연과 세계 전체에 대한 목적론이다. p. 299.

  정의와 선을 연관 짓는 방법에 대해서는 첫째, 정의의 원칙이란 특정 공동체나 전통에서 널리 공유되는 가치로부터 도덕적인 힘을 얻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즉 공동체의 가치가 정의와 부정의를 규명한다는 점에서 이 방법은 공동체주의적이다.
  둘째, 정의의 정당성은 그것이 만족시키는 도덕적 가치나 내제적인 선을 근거로 한다는 사고방식이다. 어떤 행위를 정의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행위가 중요한 인간의 선을 존중하거나 증진시키고 있음을 보여주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p. 354.

  
 샌댈이 제기하는 선이 있는 정의는 윤리적이고 정신적인, 고전적인 정의의 개념이다. 그리스 시대 이래로 정의는 윤리성을 띠고 있었다. 이 개념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했고, 동양에서도 유교의 의는 윤리성을 띠고 있다. 따라서 동서양을 불문하고 정의는 어떤 의미에서든 윤리성을 띠는 것이 보편적이다. p. 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