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4일 화요일

마이클 샌델의 정의사회의 조건

  공리주의는 개인이 느끼는 기쁨이나 쾌락이 행복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정언명령에는 두 가지 공식이 있다. 첫째는 보편적 법칙의 공식으로 당신의 의사의 준칙이 항상 보편적 법칙이 되도록 행동하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즉 행위의 준칙을 보편화함으로써 그것이 정언명령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이러한 준칙의 보편화는 자신의 욕구나 욕망을 타인의 그것보다 우선하는가를 조사하기 위한 테스트다.

  정언명령의 두번째 공식은 목적으로서의 인간성의 공식으로 이성적 존재인 인간에 대해 당신의 인격이든 다른 사람들의 인격이든 간에 인간성을 단순한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명령하는 것이다. 거짓말이나 살인, 자살은 모두 인간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이는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해서는 안 되는 행위다.

  오늘날 세계에서는 과학적 세계관이 발전하면서 목적론적 세계관이 쇠퇴하고 있다. p. 93.

  인간에게는 자유로운 의사나 선택뿐만 아니라 구성원의로서의 책무도 존재한다. 왜냐하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인생이나 공동체를 해석하고. 그 이야기가 구성원으로서의 책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이야기적인 좋은 삶을 고려하지 않고 정의를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정의를 생각할 때 도덕적 또는 종교적 문제를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 p. 97.


  고전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은 자연과 세계 전체에 대한 목적론이다. p. 299.

  정의와 선을 연관 짓는 방법에 대해서는 첫째, 정의의 원칙이란 특정 공동체나 전통에서 널리 공유되는 가치로부터 도덕적인 힘을 얻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즉 공동체의 가치가 정의와 부정의를 규명한다는 점에서 이 방법은 공동체주의적이다.
  둘째, 정의의 정당성은 그것이 만족시키는 도덕적 가치나 내제적인 선을 근거로 한다는 사고방식이다. 어떤 행위를 정의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행위가 중요한 인간의 선을 존중하거나 증진시키고 있음을 보여주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p. 354.

  
 샌댈이 제기하는 선이 있는 정의는 윤리적이고 정신적인, 고전적인 정의의 개념이다. 그리스 시대 이래로 정의는 윤리성을 띠고 있었다. 이 개념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했고, 동양에서도 유교의 의는 윤리성을 띠고 있다. 따라서 동서양을 불문하고 정의는 어떤 의미에서든 윤리성을 띠는 것이 보편적이다. p.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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