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5일 수요일

사람들은 서로에게 신으로 비칠 것이다 - 르네 지라르

  사람들은 서로에게 신으로 비칠 것이다. 짧은 글이지만 르네 지라르의 통찰력은 실로 놀라울 정도이다. 프로이트에서 시작한 인간 욕망의 근원을 찾고자하는 수 없이 많은 이론들은 융의 분석심리학을 이어 라깡의 욕망이론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구체화되고 있는 듯하다. 여기서 르네 지르라의 이론은 욕망의 근원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나의 앞에 있는 다른 사람을 말한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따라하고 그것을 충족시키고 그것이 끝나면 또 다른 타인을 찾아야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존재는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인간들이 서로간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모방하는 사회인 것이다. 조금 더 좋은 핸드폰, 아파트, 의복, 자동차 등이 그 모든 욕망의 산물인 것이다. 내가 저 사람이 가진 그것을 소유한다면 나도 저사람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은 곧 그가 신이 된다는 의미를 지닌다.


   우리 사회를 강타했던 줄임말인 '엄친아'라는 것이 욕망의 표상을 보여준다. 바로 저기 저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닌 바로 내 곁에 있는 그가 나의 신이 되고 있음을 말한다. 르네 지라르에 따르면 타인을 따르는 욕망이란 예외없이 타인이 되고 자 하는 욕망이라고 말한다.

   기독교의 예수의 경우에도 비슷한 과정을 보여준다. 그가 인간에게 단 한번도 보여진적이 없는 신이었다면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에서 사라진 수 없이 신들과 같은 위치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인간들에게 보여주었다. 자신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인간에게 끊임없는 신으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그가 행한 선한 행동들은 타인들에게 신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어찌되었든 그는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다시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냈다. 철저하게 자신을 들어내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인간에게 신의 영역에 남게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의 입장은 어떠했을것인가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가 될 것이다. 그의 행동이 인간에게 신적으로 보였다면, 예수는 인간을 바라보면서 신으로 느끼지 않았을까? 그도 인간이었기 때문에 분명히 배고픔도 느끼고 추위도 느끼고 아픔도 느꼈을 것이다. 배부르게 먹는 사람을 보면서 정말로 단 한번도 그러한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았다고 과연 단언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배설의 욕체적인 쾌락을 단 한번도 느끼지 않았을까? 배설은 오직 대변과 소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욕 역시 배설의 욕구와 거의 유사하다. 혹시 그는 성욕을 마음껏 해결하는 타인들이 부럽지는 않았을까?


   르네 지라르의 이론을 적용한다면 예수도 인간을 신으로 바라봤을 것이다. 물론 모든 인간이 예수에게 신처럼 비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중에서 몇몇 그가 부족한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예수가 부족한 것이 물질적인 가치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인 가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점에서 가지고 싶은 욕망의 개체는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때에 간과하는 것이 있다면 예수의 인간적인 감정이다. 분명 성경은 예수의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분노를 할때도 있고,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는 열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때문에 그의 인간적 감정은 자연스럽게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증명한다. 그의 부족한 부분을 예수가 본 사람들에는 없을 수 있다. 그런데 예수가 본 인간의 숫자란 그 당시의 전체 인류의 숫자와 비교하면 너무 작다. 그 당시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예수가 모방하거나 부러워하지 않았다고해서 인류 전체에 대한 부러움과 모방이 없었다고 말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예수가 말한다. 들에 있는 풀도 하나님이 기르는데 하물며 너희 인간들이겠느냐라고 말한다. 그렇다. 풀이 그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하나님이 기르는 풀을 보고 인간은 자연스럽게 부럽게 느껴지게 된다.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은 바로 그러한 욕망의 모방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신이 될 수 있고 모두 신의 아류가 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대중문화에서 상대방을 바라보면서 나의 거울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예전에 봤던 마티즈차에 붙어 있던 글귀는 가끔 웃음을 자아낸다.

"나도 어서 커서 에쿠스가 될래요!"

당신이 바라보는 욕망의 대상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생각하고 어떻게하면 타인에게 자신이 신처럼 보이게 할 것인지는 신이 되느냐 신을 바라보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할 것이다. 이제 결정할 수 있다. 타인에게 나를 신처럼 보이게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타인을 신처럼 바라보고 살아갈 것인가...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라는 세간의 말이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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