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5일 수요일

도대체 왜 도덕적이야 하는가?

도덕과 종교의 상관관계에 관해서 생각해보았다. 종교를 가진 사람은 언제나 도덕적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했다. 필자는 신이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라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일단 넘어가기로 하겠다. 과연 신에 대한 믿음이 도덕을 위한 충분조건인가 아니면 필요조건인가라는 명제를 고민한 것이다.


아마도 신의 존재를 확신하는 사람은 신의 의지가 신에 대한 모든 믿음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따라서 신의 의지로 환원되는 도덕의 당위 타당성도 믿음과 독립적이라는 견해를 당연히 주장할 것이다. 이러한 견해가 가능하기는 하지만, 결론에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이 견해로부터 도덕과 도덕의 당위성을 이해하는 것은 신을 믿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오기 때문이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나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러한 이해의 가능성으로부터 제외될 것이다.



그렇다면 신을 믿는 사람이 정말로 도덕적인가라는 명제를 재확인해봐야 할 것이다. 구약성서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중에 한명인 아브라함의 경우를 다시 판단해봐야 한다. 자식을 죽이는 행위가 신의 명령으로 정당화된다. 게다가 성서에는 아브라함의 그 어떠한 도덕적인 딜레마도 도출되지 않는다. 너무나도 당연한 행동(자녀살인)이 수반되고 있다. 물론 극적으로 아들은 생존에 성공한다. 아들이 죽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의 어려운 희생을 감수하는 것으로부터 그의 행위방식을 도덕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 결코 도출되지 않는다. 고층 빌딩을 파괴하기 위해 여객기를 폭탄 대용으로 사용한 테러리스트들도 신의 임무를 근거로 내세웠고, 그러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거대한 희생(그들의 목숨)도 감수했다.


아브라함의 광신주의는 위에서 언급한 테러리스트들과 자신의(거의 저지른) 범죄의 규모에서만 구별된다. 그들의 공통점은 <더 고귀한 목적>을 위해서 도덕적 당위를 저버릴 것이 요구한 것이다. 종교적인 광신주의에 의해 내걸린 슬로건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슬로건과는 반대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했던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가능할 것이다>라는 문구는 다시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신이 존재한다면, 모든 것이 허용될 것이라!>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신을 믿는 사람들보다 언제나 더 비도덕적이라는 것에 대한 경험적인 근거는 없다. 종교적으로 강하게 각인된 시대나 지역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았던 시대나 지역의 사람들보다 더 도덕적이라는 것에 대한 간접 증거조차도 없다. 따라서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무도덕성에 대한 보증도 아니고, 신을 믿는다는 것이 도덕성을 보증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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