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5일 수요일

인간은 소변과 대변 때문에 신이 될 수 없다?!

인간은 소변과 대변 때문에 신이 될 수 없다?!
 
 
 
  모든 인간은 각자의 삶에서 나름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세계관은 인간의 얄팍한 이성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가벼운 배움에서 나타나는 것을 마치 자신의 세계관이라 믿고 살아가는 것이다. 성경의 히브리서에 기록된 믿음의 관한 설명처럼 자신이 믿는 그것은 실제가 파악되지 않더라도 믿음 그 자체가 증거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든, 불교의 석가든, 혹은 그 어떠한 것이든 상관없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래서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관한 비판과 의심이 없다. 기독교도 여기서는 동일하다.

  자신의 내적 비판이 없는 신앙이라는 것은 광신과 다를 것이 아무것도 없다. 신의 이름이라는 이유로, 혹은 신의 영광이라는 이유로, 그 밖에 은혜라는 이유로, 이 땅의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고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지 주변의 교회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막대한 대출을 받아서 지어진 교회는 고스란히 성도들의 평생의 짐으로 적용되고 교회의 질적인 성장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전도는 뒷전에 밀려있다. 어찌보면 대한민국의 모든 교회가 목사라는 한 인간을 신격화 시켜서 그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요구한다. 또한 대통령이 장로이기 때문에 기독교는 사회적인 발언 한번 못하는 충성된 개가 되어 있다.


  기독교가 카톨릭의 맹목적인 광신의 비판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상기해본다면 신의 뜻을 잘 이루기 위해서는 내적 비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시사한다. 내적비판은 회의와 토론 그리고 대화와 타협이다. 인간은 신의 뜻을 알 수 없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그 뜻을 약간의 시간만 지나면 소변과 대변을 처리해야 하는 인간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아무리 위대한 사회적 위치에 올라가고 또 신과 대항할 지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이루어 놓은 완벽한 세계에서 벗어나서 우리 인간은 화장실을 가야한다. 그리고 내가 인간임을 깨닫을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생리현상 앞에서 우리는 최고의 치장과 다이아가 있더라도 그곳에서는 늘 혼자이다. 아무리 완벽하고 순수함을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인간은 소변과 대변 앞에서 저항할 수 없다.


  인간의 힘으로 자신을 정화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잠시 대통령이라는 놀이를 그만두고 신이 뜻이 무엇인가를 깊게 고민해야 한다. 신의 뜻이라는 이유로 국민을 죽이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신의 대리자가 되려는 오만한 자들은 이제 화장실을 가야할 때이다. 그곳에서 내가 인간임을 깨닫기 바란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대들의 완고한 믿음이 곧 증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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